
코로나19가 시작이 되면서 많은 업계들이 불황을 맞이했지만, 이 업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바이오, 의약품 업계죠. 백신부터 시작해서 치료제까지 코로나19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 중 우리나라에서는 이 기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셀트리온이죠.

실제로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자산 규모 12조원으로 한 때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는 177번째로 돈이 많은 인물로 손꼽히기도 했는데요. 국내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체 셀트리온을 이끈 서정진 회장은 그렇다면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게 되었을까요?

연탄 배달을 하던 가난한 어린시절


국내 최고 수준, 세계적인 부호로도 손꼽히는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하지만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없어서 힘든 시절을 보낸 것이 더욱 맞죠. 그는 충북 청주의 연탄가게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중학생 때까지는 집안 일을 도우며 연탄 배달일을 하기도 했죠.

이것뿐만 아닙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등록금이 없어서 고등학교 입학을 1년을 늦추기도 했다는데요. 대학 시절에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 위해서 택시를 끌고 영업을 하며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대학 수석 졸업을 하면서 삼성전기, 대우자동차 등에 취업을 해 일을 했죠.
2002년 바이오 산업의 시작,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의 사업은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외환 위기 시절 실직을 하면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는데요. 하지만 창업에 줄지어 실패를 하게 되었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뛰어든 바이오산업에서 비로소 빛을 찾게 되었습니다.

서정진 회장이 셀트리온을 창립한 것은 2002년. 2000년이 되던 해 그의 사업가 구상했던 사업이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02년 6월에 셀트리온은 벡스젠, VCI를 설립하고 이듬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하기도 합니다. 당시 제약회사들은 연구개발을 한 후 개발 의약품 시판 허가를 받고,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방식의 운영을 고집했었는데요. 서 회장은 역발상으로 생산 설비를 갖춘 후 위탁 생산 사업을 통해 의약품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시장에서 통하며 2005년 미국 제약사와 계약 체결, 2007년에는 아시아 최초 미국 FDA 설비 승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65세에 새로운 스타트업 도전!

오랜 시간 셀트리온을 이끌어 오던 서정진 회장은 지난 12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 돌입하기로 한 것인데요. 하지만 셀트리온을 떠났지 업계를 떠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새로운 스타트업을 구상 중에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죠.
우리는 때로 나이가 들면 열정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정진 회장은 65세의 나이에 다시 새로운 사업을 꿈꾸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가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스타트업은 혈액 검사 스타트업으로 이를 통해 앞으로 서 회장이 또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 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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